📑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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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의도"라는 것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나는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울증이 있는 우리 형이 최근 말도 안 되게 거액의 대출을 받아 주식으로 전부 날리는 사고를 친 일이 있었다. 그 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자포자기로 배달 음식과 잠을 반복하며 살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터라 자기 연민, 수동 공격, 자기 합리화 같은 것들에 오히려 잔뜩 질려 있었다. 우울증이 있는 당사자가 물론 제일 힘들겠지만, 그 주변인 역시 같이 힘들어진다. 

우울증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그와 서로 애정하는 관계에 있는 이의 강한 인내심, 그리고 그를 우울의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적극성이라는 게 현재의 생각이다. 그렇다, 우울증 환자를 돕는 것은 "아무나"가 아니고, 그와 애정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이자 동생인 나는, 우리 형에게는 수많은 ‘아무나’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예쁜 여자가 그랬다면 분명히, 정말 분명히 달랐을 텐데, 정작 한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어떤 말을 해도 그닥 형의 마음까지 닿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에 보여도 그것을 바꿀 힘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은 참 고통스러웠고, 저 철없는 인간의 철없는 행동이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노후에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 고통을 증폭시켰다. 

우울을 바라보는 이런 삐딱한 마음을 장착한 채로 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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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우울한 이의 마음을 정말 어떤 각색도 없이 있는 그대로 꺼내 놓은 책이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시청자가 어느 입장에 몰입해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암시를 주는 여러 장치들이 이미 있다. 그래서 주인공의 눈으로 서사를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은데, 그런 의도 다분한 각색이란 게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이 책을 읽으면서는 솔직히 자꾸 작가가 아니라 작가의 주변 인물들의 입장에 몰입이 되기도 했다. 독자인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그래서 더욱 그랬다.

우울은 정말 교묘했다. 아마 어떤 사람이 우울의 현장을 카메라로 포착해서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들, 그 사진을 본 모든 타인이 우울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백세희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울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육체로 만들어진 경계선의 내부에서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때로는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조차도 작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백세희 작가가 힘들었던 게 이런 점이었을까? 

세상에 바라는 것은 분명 엄청 많다. 

그 바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은 내면에서 거대한 칼날이 되어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바람은 "구체적인 채움"을 갈망하는, 목적이 있는 바람이 아니다.

사실은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채워 주는 게 불가능한 그런 밑 빠진 삶의 항아리와 같은 것이고,

거기에 끝없이 무언가를 채워 보려고 예민함과 불안감을 들이부어 보지만,

어떻게 해도 꽉 채워지지 않는 데에서 느껴지는 아주 근본적인 공허함,

그게 작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듯 보였다.

작가는 냉소적이고 특별히 바라는 게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치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처럼 방향성 없는 작은 호소들을 계속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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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울증 치료 기법을 개발했던 스탠퍼드대의 놀란 윌리엄스 교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교수도 그렇고, 백세희 작가도 그렇고, 이분들이 우울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우울이 뭔지를 깊이 이해한 사람들조차도 삶의 끝까지 그것을 잘 다루어 내지 못하고 이런 선택을 했다면 도대체 우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할까? 

인터넷에는 "우울증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마세요"와 같은, 우울증 환자에게 공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형태의 콘텐츠들이 많이 있다. 사실 내 상태가 어떠하든,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이유 불문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은 하나의 욕구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우울증도 외과적 수술처럼 명백하게 객관적인 지표들로 치료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라는 인간의 바탕에도 우울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편인데, 내가 어디 가서 "난 눈이 안 좋아(=시각장애인이야)" 하면 "나도 눈 안 좋아!" 하던 사람들과 같은 꼴이 될까 봐 나의 우울감에 대해서는 쉽게 말을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