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리더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명 단골 주제들이 몇 개 있습니다. 바형 리더기를 사고 싶은데 추천을 부탁한다거나, 너무 예쁜 다이어리를 발견했다던가 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의 주제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북 리더기의 작동 방식’에 대한 질문도 자주 보이는데요, 오늘은 “도대체 왜 흑백 이북 리더기가 더 선명하다고 하는 걸까” 하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흑백 잉크 패널

먼저, 이북 리더기의 존재 이유인 e잉크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OLED 같은 패널을 이용하는 일반 스마트폰의 경우, 화면을 이루고 있는 픽셀 하나하나에서 정말 빛이 나옵니다.
‘본다’는 것은 빛이 눈 안으로 들어와서, 그 빛이 갖고 있던 에너지가 시세포에 흡수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이 눈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어요.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경우 핸드폰에서 직접 나오는 빛이 우리 눈에 흡수돼서 볼 수 있는 거고요, e잉크 패널을 이용하는 이북 리더기의 경우에는 ‘반사광’, 즉 햇빛이든, 방 안 조명이든, 아니면 이북 리더기 내의 프론트라이트든(!) 이북 리더기에 반사된 빛을 우리가 보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깜깜한 방 안에서는 이북 리더기 화면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북 리더기 자체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요! (이북 리더기의 프론트라이트는 백라이트처럼 기기 뒷면에서 눈을 향해 직접 쏘는 빛이 아니라 ‘화면을 향해’ 쏘아 그 반사광을 보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이북 리더기의 화면은, 사실 종이책 같은 거예요.

1픽셀의 표현

이북 리더기의 e잉크 패널 안에는 마이크로캡슐이라는 게 있어요. 알약 떠올리시면 돼요. 이 캡슐 1개가 1픽셀(점 한 개)을 표현합니다. 이 마이크로캡슐 안에는 ‘하얀 알맹이들’과 ‘까만 알맹이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마이크로캡슐의 뒤편에는 각각의 캡슐에 전압을 가해줄 수 있는 TFT 패널이 있어요.
하얀 알맹이와 검은 알맹이는 띠고 있는 전기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전압을 어떻게 걸어주느냐에 따라 어떤 알맹이가 얼마나 위쪽으로 올라올지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알맹이들은 오일 같은 투명한 액체에 담겨 있기 때문에, 한 번 위치가 이동하면 추가 전기가 없으면 다시 내려가지 않아요.
그래서 이북 리더기는 화면이 실제로 꺼져 있는 상태에서도 화면에 무언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화면이 켜져 있어서 배터리 먹는 거 아니냐’라고 오해하시는데, 그냥 알맹이가 그대로 떠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슬립 화면(sleep screen)입니다.
하얀 알맹이들이 100% 위로 올라오면 하얀 화면이 되고, 까만 알맹이들이 100% 위로 올라오면 까만 화면이 됩니다. 그리고 둘의 비율을 조절해서 다양한 그레이스케일을 만들 수 있어요.

칼레이도 3과 같은 컬러 패널은 어떻게 작동할까?

컬러 이북 리더기는, 저 흑백 잉크 패널 위에 ‘RGB 컬러 필터’를 덧씌운 것입니다.

구조는 (위에 있는 것이 최상단입니다)

이 순서로 구성되어 있어요. 마이크로캡슐 안의 하얀색·까만색 알맹이가 화면을 표현하고, 그 위에 컬러 필터가 덧씌워져 있는 구조인 거죠.

앞에서 ‘점 1개 = 마이크로캡슐 1개’라고 했죠? 이 점 1개 위에는 컬러 필터의 색상 1개가 배치됩니다.

점 1 = 빨강

점 2 = 초록

점 3 = 파랑

이런 식이에요. 실제로는 디자인마다 다르지만, 우리 눈이 초록색 정보를 가장 많이 밝기 정보로 인식하기 때문에 초록 픽셀을 두 번 넣어서 “빨강, 초록×2, 파랑” 네 개를 세트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컬러 이북 리더기의 해상도가 더 낮은 이유 

자, 그럼 4개의 픽셀은 흑백에서는 4개의 점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컬러에서는 4개의 픽셀이 각각 빨강, 초록, 파랑(그리고 설계에 따라 추가 초록/투명)을 담당하고, 이 네 개가 합쳐져 하나의 색 점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흑백에서는 4개의 픽셀로 4개의 점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던 것이, 컬러에서는 (여러 색이 섞여야 우리 눈에 하나의 색으로 보이니까) 4개의 픽셀이 모여 1개의 색 점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흑백 300ppi, 컬러 150ppi”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컬러 이북 리더기의 화면이 더 어두운 이유 

아직 의문이 다 풀리지 않으신 거 알아요! 흑백 캡슐 위에 컬러 필터가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색상을 표현한다는 걸까요?

자, 마이크로캡슐이 까만색을 표현하면, 까만색은 어차피 모든 빛을 흡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컬러 필터를 거쳐 보아도 여전히 까만색입니다. 그러니까 컬러 이북 리더기에서 까만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냥 마이크로캡슐에서 까만 알맹이들이 위로 올라오게만 하면 돼요.

그럼 하얀색은 어떻게 표현할까요?

네... 완벽하게는 표현 못 합니다.

하얀 빛이라는 것은 “여러 파장의 빛이 섞인 빛”입니다. 태양빛을 예로 들면 빨주노초파남보는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자외선까지 들어 있어요.

우리는 R(빨강), G(초록), B(파랑) 세 가지 원뿔세포로 색을 인지하는데, 하얀색으로 보이려면 RGB 빛이 충분히 섞여서 눈에 들어와야 해요.

하지만 컬러 이북 리더기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빛은 가뜩이나 적지, 그 적은 빛은 컬러 필터를 지나며 더 약해지지, RGB 서브픽셀 간 간격 때문에 하얀 점으로 보일 정도로 잘 섞이지도 않지… 그래서 화면이 전반적으로 어둑하고 탁하게 보이게 되는 겁니다.

정리를 하자면,

이렇게 색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가 그림을 그려 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눈이 감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