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영상을 두 번 삭제했다. 나와 같은 유전성 희귀 망막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온라인에 한국어로 된 관련 영상이 아예 없으니까) 환자로서 경험담도 공유하고 병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어야지 했는데, 영상을 만들고 계속 내 설명의 문제가 발견돼서 지우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 중이다.
이번에 발견한 오류는 바로 범맥락막위축증에서 눈의 구조가 망가지는 순서다.
나는 RPE(망막색소상피세포) → 시세포 → 맥락막 순서로 망가진다고 이해했었는데, 그렇게 단정지을 문제가 아니었다.
맥락막의 혈관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바로 RPE가 보내는 혈관 건강 유지 신호(VEGF)다. 그러니, 시세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망막색소상피세포의 퇴행은 맥락막의 퇴행을 부추기는 데에 충분하다.
그런데 또 시세포는 RPE가 망가지는 시점부터 이미 영향을 받는다. RPE가 제기능을 해야 비타민 A 재활용도 할 수 있고, 외절 처리도, 그 외절과 비타민 A 유도체가 만나며 생겼던 독성 분해도 할 수 있으니, RPE가 그 기능을 못하면 시세포는 죽는다. 동시에, 맥락막이 위축되면서 산소 공급량이 줄면 시세포가 그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RPE가 영향을 받은 다음에 "시세포가 먼저 죽냐, 맥락막이 먼저 죽냐" 하는 건 100% 확실하게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병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하고 작동 기전을 일종의 모델로 만드는데, 그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서 접근하냐에 따라 병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마치 원자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원자 모델이 존재했고, 계속 더 관찰된 내용에 맞게끔 변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연구자도 아닌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영상의 톤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 그냥 올리고 잊고 살면 좋은데, 어차피 찾아보는 사람도 드문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