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말이긴 하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쓸 때 어떤 한 문장을 타이핑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문장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여기는 나의 개인적인 믿음,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프레이밍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전 글에서 "세상의 근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왜 대중의 인기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물리학은 돈을 못 버는 학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글의 내용을 이어갔었다.
그런데 계속 내 머릿속에서 떠도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다. 왜냐하면 엄청난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돈을 못 버는 학문"이라는 문장이, 그 표현을 사용했던 나 자신에게도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리학 자체는 사람이 아닌데, 돈을 벌고 못 벌고의 책임을 왜 "물리학"에 있는 것처럼 쓰고 있었지?
물리는 세상의 이치인데, 물리에 죄가 있을리가
나는 프랑스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잠깐 전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하나의 개념이 재밌다고 느껴질 때까지 계속해서 곱씹는 습관이 있었는데, 학교라는 곳은 계속 돌아가야만 하는 하나의 큰 시스템이다보니 다수의 학생을 상대로 그간 해 오던 방식의 수업을 하고, 그간 하던대로 시험을 보고, 그간 하던대로 평가를 하기 바빴다. 내가 머리가 조금만 더 비상했다면 그 시스템을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많이 둔했고, 그냥 낙오된 학생일 뿐이었다. 전하라는 게, 전기장이라는 게, 빛이라는 게, 에너지라는 게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는데, 학교에 가면 양자역학의 초기 형태인 행렬역학 같은 것을 가르쳤다. 근본을 이해하겠다고 물리학과로 편입을 한 건데,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수업만 어영부영 따라가는 건 당시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물리학은 "그거 해서 뭐 먹고 살래"의 대표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그건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원에 가면 프랑스인 실내악 선생님이 "물리학을 전공한다고? 나중에 뭐 하려고?" 하고 걱정을 하시더라. 그런 "가난한 물리학"인데, 일론 머스크에게 물리학은 뭐였길래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까?
앞으로 내가 쓸 글은, 일론 머스크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의 행적에 대한 나의 시선이 주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내면은, 그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타인은 나의 말, 행동, 생김새 등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외면이 주는 인상"을 통해, 그리고 "그들과 나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일 것이라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 역시 그 자신에게는 그가 "나"이므로, 타인인 내가 그를 검색 몇 번을 통해 파악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폭력 대신, 나는 그저 "세상의 근본에 대한 관심이 내가 가난하게 된 이유"라는 못된 핑계를 대고 있는 나 자신을 혼내기 위해 일론 머스크, 그를 이용할 생각이다.
부자인 부모가 자식에게 진짜로 물려주는 것
일론 머스크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파헤치기 시작하면, 그 가장 첫머리에는 늘 "부유한 가정환경"이 있다. 일론 머스크는 태어날 때부터 집안이 부유했다. 하지만 난 "부자 부모의 자식이 부유한 이유"가 절대 부모가 "부"를 물려줬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자식이 물려받는 것은, 부가 아니라 "일단 하면 당연히 되겠지"라는, 실행을 하게 만드는 긍정의 "무의식"이다. 부유한 환경에 있으면 그런 무의식을 물려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본인도 그것을 정말 환경적으로 물려받았는지, 자연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비관은,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악마와도 같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하니 실행을 할 리가 없고, 실행을 하지 않았는데 결과로 나타날 리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아버지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진실은 모르지만 정당방위를 위해 사람을 죽인 적도 있고,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와 이혼한 다음에 만난 두 번째 부인의 딸과 관계를 맺어 자식을 낳기도 했다.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면, 그 외의 일들에선 어떤 태도였을지도 감히 짐작해볼 수 있다. 위인전에서는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예수님 같은 성인으로 묘사하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름다운 성공이 일반 사람들은 꽤나 납득하기 힘든 구조의 내면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외적으로 남들과 다른 결과를 냈다면, 내면도 남들과 다르다는 뜻이다.
일론 머스크는 아버지를 거의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히 무엇을 목격했는지,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그토록 안 좋았다면 아마 그런 아버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결과적으로는 일론 머스크를 더 끓어오르도록, 본인의 주관에 더 확고해지도록, 그리고 실행하도록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저 관계가 편안하기만 하다면 의존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어서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 "덕"을 돌리곤 하지만, 사실 내가 관계가 끔찍하게 안 좋아서 내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사람조차도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다만, 상처가 너무 쓰리니 "긍정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거 자체에 거부감이 들 뿐이다. "네 성공은 아버지 덕이다"라는 표현이 일론 머스크에게는 얼마나 거북하게 느껴질까?
다음 편에서는 그가 과거에 공부한 흔적, 그의 행적, 인터뷰 등을 통해 물리학이 그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한 본격적인 힌트를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