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론 머스크가 그간 해온 사업들의 "흐름"을 보면 이렇다. 

일론 머스크가 인터넷 사업인 Zip2를 시작하기 직전엔 박사 과정을 등록했었다. 재료공학, 그 중에서도 에너지와 관련된 연구 주제를 가지고 들어간 박사 과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자퇴하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 (석사 학위는 따로 없다. 미국에선 석사 학위가 없어도 바로 박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석박사 통합 과정도 비슷하게 석사 없이 바로 박사를 밟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게 "물리학은 굶어 죽기 좋은 분야"라는 이상한 편견을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깼는지를 이해하는 가장 첫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면, 그리고 물리학에 뜻이 있다면 보통은 석사, 박사를 밟고 연구원이 되든, 교수를 하든 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이다. 아주 전통적인 "한 분야에만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이건 좀 센 표현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루트"라는 표현은, 통계적으로 안주하고 싶은 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혹은 지향하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안주라는 게 '게으르게'라는 의미는 전혀 아닌데(교수보고 어떻게 게으르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감히...), 길을 개척하는 데에 있어서 창조적이지 않다 정도의 의미는 대충 맞는 것 같다. '나는 이거 하는 사람이야' 하는, 나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고, 그 안에서만 숨쉬는 방식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로 예중, 예고, 음대, 석박사 유학 후 귀국해서 강사를 한다가 교수에 임용된다는 아주 전형적인 루트가 있는데, 이 루트를 따르려고 할 때, 클래식 음악도 굶어 죽기 딱 좋은 분야라는 게 어쩔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린다. 일론 머스크는 박사를 하는 시점에 핸들을 확 틀었다. 하지만 새롭게 바꾼 경로는 결코 물리학과 무관하지도 않았다. "우주 발사체 개발", "전기 자동차" 이런 것만큼 "에너지"와 대놓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분야도 또 없으니까 말이다. 

Zip2와 인터넷의 발달

Zip2는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구글맵 같은 기능을 하던 서비스이다. 90년대는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로, 아직은 종이 형태의 정보를 훨씬 더 활발히 소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온라인으로 가져와서 지도의 어느 위치에 어느 가게가 있는지, 그 가게는 어떻게 가는지,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등의, 2025년 현재에도 유용한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그가 당시 만들었던 서비스는 여기서 대충 체험해볼 수 있다.

내가 Zip2 같은 사업을 했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이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2025년의 내가 이 머리 그대로 95년으로 돌아가 Zip2 사업을 한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막혔을까? 

1. 지도 정보는 어디서 가져오지?

2. 서버는 어떻게 만들지?

3. 가게들 정보는 어떻게 얻지?

4. 내가 만든 서비스를 기업들에게는 어떻게 팔지? 

나는 분명히 이런 문제들 앞에서 소심해졌을 것이다. 데이터를 가져오려면, 또 서버를 구축하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것도 발달하지 않아서, 웹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물리 서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자본이 있으려면 투자자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있으려면 인맥... 그리고 그 사업의 뚜렷한 비전이 필요하다. 사업의 비전이 있으려면 그를 실행시킬 기술력이 필요하다. 기술력이 있으려면 흥미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보통은 이런 게 전부 순서가 꼬여서 일을 순조롭게 해 나가기가 어렵다. 흥미도 없는데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하다가 동력을 잃고 그만둔다던가, 자본만 쏟아붓고 시장의 흐름은 못 읽어서 도태된다던가...

초기 투자금 

일론 머스크는 15,000 달러 공동 창업자들의 자본(일론 머스크는 그 중 2,000달러를 투자)과 소규모 엔젤 투자자(지인, 스탠퍼드 인맥 등 추정)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돈은 팔로알토(미국 실리콘밸리의 도시 이름)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고, 서버와 기본 장비를 구입하며, 무료로 구할 수 있었던 Navteq 지도 데이터지역 비즈니스 데이터베이스를 결합한 첫 시스템을 만드는 데 쓰였다. (나중엔 최고기술책임자로 직책이 바뀌었지만 초반에는 일론 머스크 본인이 코딩을 통한 개발도 직접 했던 것 같다.)

여기서 지역 비즈니스 데이터는 무료가 아니었는데, 전화번호부(옐로페이지), 지역 상공회의소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매하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 이후, 부친인 에롤 머스크로부터 약 2만8천 달러의 자금이 추가로 유입됐다(에롤 머스크가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다. 일론 머스크는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아서인지 이를 부정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또 일부 인정했다고 한다. 아마도 본인 생각에 사업에 치명적인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공이 본인이 싫어하던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 자체가 싫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는 서버를 확충하고 상용 지도·데이터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등 서비스 안정화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기술력을 다졌다. 비전은 있지만 직원 수도, 수익도 적던 시기다.

성장 자금 

지도와 상점 데이터를 결합하는 기술을 다져 놓은 상태에서, 1996년에는 벤처캐피털인 Mohr Davidow Ventures로부터 3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자금은 단순 지역 영업에서 벗어나 전국 단위 신문사에 백엔드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판매하는 B2B 전략으로 전환(개인이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데 쓰였고, 외부 CEO 영입, 영업·마케팅 강화, 그리고 대형 신문사와의 계약 추진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기부터 Zip2는 뉴욕타임스, Knight Ridder, Hearst 등 미국 주요 언론사와 제휴해 온라인 시티 가이드를 구축했고, 1998년까지 약 160개 신문사와 협력할 정도로 성장했다. 계약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의 일부를 다시 서비스 확장과 인프라 강화에 재투자하며 빠른 성장을 이어갔다.

후기

마침내 1999년, 컴팩(Compaq Computer)이 3억 500만 달러에 Zip2를 인수하면서, 일론 머스크는 약 2,200만 달러, 킴벌 머스크는 약 1,5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초기 엔젤 투자와 VC 투자가 어떻게 사업 확장과 전략 전환을 견인했고, 그 결과로 성공적인 엑시트(Exit)에 이르렀는지가 Zip2의 전형적인 성장 경로였다.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